수백명이 등장하는 대하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공감하기 힘들고 어느 한 편에 공감하며 읽게 되는데, 나는 염상진, 염상구 형제의 어머니 호산댁에 공감하며 읽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호산댁이 염상진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장면은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았다.
이념이 무엇이길래? 숨어서 도망다니고,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고, 평생 형제간(염상진-염상구)에 서로 공격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냥 조용히 시키는 대로 안전하게 살면 안 되나? 그들의 부모와 똑같은 소릴 하며 내내 읽었다. 이념은 하나의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염상진이 이끄는 빨치산이 벌교를 해방구로 만들었을 때, 벌교 사람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땅을 갖는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토벌군이 들어오며 이는 무자비한 학살로 되돌아 온다. 그 과정에서 피를 보는 것은 평범한 인민이다.
김범우의 아버지가 염상진을 어렸을 때부터 친아들처럼 아꼈는데 염상진이 빨치산 대장이 되어 돌아와 자신을 인민재판에 세웠을 때, 수모를 겪고 염상진과 절연하게 되는 과정도 안타깝다. 한 때 가깝고 아꼈던 이들이 이념 때문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야 했던 일은 아마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이 소설이 이념적으로 중립적인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작가가 공식적으로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염상진을 비롯한 빨치산을 인간적인 고뇌를 갖는 정의로운 투사로 묘사한 데 비해, 염상구를 깡패나 폭력배로 그린 것도 석연치 않다. 물론 진압 과정에서의 잔인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 내내 독자를 설득하듯 설명하는 공산주의적인 내용이나, 마지막에 하대치가 다시 산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왜 이 소설이 우익은 물론 중도파에게도 공격받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김범우는 중도적 인물이자 무기력한 지식인이다. 염상진과는 어려서부터 친구이지만 그의 공산주의적 투쟁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염상구와 우익 청년단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소신 있게 반대한다.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고 슬퍼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중도적 민족주의자였던 그 역시 한국전쟁을 겪으며 좌익에 기울게 되고 인민군에 가담하여 후퇴하던 중 총상을 입고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불구의 몸으로 반공포로로 석방된다. 김범우의 말이 곧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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