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추락 사고로 무인도에 남겨진 영국 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에는 어른 없는 세상을 마냥 즐거워하던 아이들이 어떻게 문명인의 모습을 잃고 야만적으로 변해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규칙과 본능, 두 리더의 대립
이야기는 크게 두 소년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대장으로 뽑힌 ‘랄프’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다. 그는 소라를 불어 아이들을 모으고, 회의를 통해 규칙을 정하며,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한 봉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명사회의 질서를 섬에 재현하려는 그의 노력은 처음에는 순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성가대장이었던 ‘잭’은 다르다. 그는 사냥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는 것에 집착하며 점차 폭력적인 본능을 드러낸다. 잭에게 봉화는 사냥보다 중요하지 않고, 규칙은 거추장스러운 족쇄일 뿐이다. 그는 얼굴에 위장용 색칠을 하고 창을 들며 아이들을 선동하고, 사냥한 돼지고기라는 즉각적인 쾌락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설 속 상징
‘파리대왕’은 여러 상징적인 장치들을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 소라: 민주주의와 질서를 상징한다. 소라를 든 사람만이 발언권을 가지는 규칙은 문명사회의 약속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라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결국 산산조각 나면서 섬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 피기의 안경: 지성과 이성을 상징한다. 소년들은 피기의 안경알로 불을 피워 봉화를 유지하고, 고기를 굽는다. 문명의 이기인 안경이 생존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는 셈이다. 이 안경을 잭의 무리가 빼앗아 가면서, 이성적인 세력은 힘을 잃고 만다.
- 파리대왕: 잭이 사냥한 돼지머리를 장대에 꽂아둔 것에서 비롯된다. 시간이 지나며 썩어가는 돼지머리에 파리가 들끓는 모습은 소년들 내면에 존재하는 악과 공포, 비이성적인 믿음을 상징한다. 소년들이 두려워한 ‘괴물’의 실체는 사실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들 마음속에 있던 ‘파리대왕’이었던 것이다.
야만성(Savagery)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순수해야 할 아이들이 서로를 죽이고, 광기에 휩싸이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특히 ‘괴물’의 정체를 알리려던 사이먼이 집단적인 광기 속에서 살해당하고, 마지막까지 랄프의 편에 섰던 이성적인 피기마저 잔인하게 죽는 장면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회의감마저 들었다. 인간의 본성을 회의적으로 그린 책은 많이들 있지만, 중2때 읽은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책들 중 내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책이라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결국 소년들은 섬 전체에 불을 지르며 랄프를 사냥하다가, 연기를 보고 찾아온 해군 장교에 의해 구조된다. 모든 야만적인 행동이 멈추고, 아이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 울음을 터뜨린다. 문명 세계의 ‘어른’이 등장하자마자 섬의 야만성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파리대왕은 단순히 무인도에 표류한 아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문명이라는 얇은 막이 걷혔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집단 광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우화다. 담임을 했던 반, 담임을 하지 않고 수업을 들어갔던 많은 반들 중 몇몇 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직장생활을 하며 본 성인들의 모습 중에도 오버랩되는 것이 많았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규칙과 이성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파리대왕’을 키우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씁쓸하지만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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