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Kill A Mocking Bird (Haper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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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라고 들었는데 읽고 나서 어딘가 불편했다. 애티커스가 좋은 사람이 맞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의 안목이 거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덮어둘 때 쯤,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정리해 본다.

불편했던 이유

첫 번째 의문을 풀기 위해 배경을 당시의 미국이 아닌, 오늘날 우리나라로 바꿔 보자.

강간 혐의로 입건된 조선족 피의자를 변호하는 한 국선 변호인

과연 그는 좋은 변호사인가? 조선족들의 범죄가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는데, 그도 실제 범행을 저질렀을 확률이 훨씬 높지 않을까? 그런 놈을 변호하다니,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가?

그런데 그가 가정에서 좋은 아버지이며, 지역민으로부터 존경 받는 지식인이며, 앵무새를 함부로 쏘지 않는 명사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조선족’ 정도의 파급을 가진 것을 충분히 고려하고 이 소설을 읽었어야 했다. 물론, 나도 당시 미국 남부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체감하지는 못했다. ‘흑인을 변호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편견에 맞서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은 채로 읽었던 것이다. 조선족을 변호했고 실제로 그가 무죄였다면 이 변호사는 전국민에게 울림을 줄 만한 가치가 있다. 미국인들에게 애티커스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나는 과연 흑인에게 편견이 없다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 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 역시 번역하자면, “나는 조선족 피의자가 과연 무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가깝겠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미국인의 롤모델 제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당시의 미국인에게 큰 울림을 준 이유를 알 것 같다. ‘1800년대 후반 미국 남부 백인 남성이라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매력적인 롤모델을 제시해 주었다. 자녀들에게 자상하고 교육적인 아버지, 지역 사회에서 존경 받고 품위 있는 어른, 노예에게 관대하고 덕망 높은 인물, 그리고 민주 사회에서 불의한 일에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줄 아는 양심인. 애티커스는 그 모든 것을 구현한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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