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교직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교직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중학교 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뭐 하나 올바른 구석이 없는 주인공을 왜 소설의 주인공으로 하였는지 의아했다. 교사가 된 지금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사고 치고 말 안 통하는,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짠한 아이가 떠오른다.
싸울 용기는 없으면서 치사하게 창밖으로 욕만 하고 도망치고, 룸메이트에게 덤볐다가 얻어맞고 뻗고, 가출해 술에 취해 허세 부리다 털리는—허세와 어설픔이 뒤섞인 불완전한 몸부림.
반항으로만 끝났다면 그저 그런 소설이었을 텐데, 마지막에는 ‘이 아이도 언젠가는 괜찮은 어른이 되겠구나’ 하는 희망을 보여준다.
“What I have to do, I have to catch everybody if they start to go over the cliff — I mean if they’re running and they don’t look where they’re going I have to come out from somewhere and catch them.”
조금 방황하고 사고쳐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봐주다가, 진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겠다 싶을 때 잡아주는 사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방황할 때 자기가 필요로 했던 어른을 얘기한 셈이다.
물론,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가 이럴 수는 없다. 학교에는 교칙이 있기 때문이다. 담임은 마음만큼은 너그럽게 포용하되, 일처리는 교칙대로 해야 한다.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소소한 사고나 치면서 선도위 정도나 들락날락하며 버티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녀석들은 징계 횟수가 쌓여 학교를 떠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 어딘가에 이런 녀석들을 품어주고 지켜봐 줄 사람은 필요하다. 이 녀석들은 습성상(?) 즐겁게 노는 것도 곱게 뛰어 놀지 않고 좀 험하게 노는데, 그렇다고 묶어둘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놈들도 호밀밭이 필요하고, 거기에도 파수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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