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중흥
고등학교 때인가. 친구들이 게임 그래픽 카드 운운하면서 언급했던 ‘엔비디아’가 십수년이 흘러 AI칩 선도 기업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동안에 엔비디아가 작정하고 종목을 바꾼 걸까. 이 책에 따르면,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GPU의 병렬 연산 능력이 AI, 딥러닝, 고성능 연산(HPC)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이 대학원생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면서 엔비디아 GPU가 AI 연구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세계 10대 우연 중 하나로 꼽혀도 손색 없을 것이다.
엔비디아의 중흥에는 우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CUDA와 같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일찌감치 구축해 놓은 것은 엔비디아의 AI 칩 독점적 지위에 크게 기여했다.
인텔이 놓친 기회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이라는 신시장이 막 열리던 시점, ARM은 인텔에 손을 내밀었다. “함께 모바일용 저전력 CPU를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제안이었다. 인텔은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우리 x86이 PC와 서버 시장에서 이미 최강인데, 모바일까지 뛰어들 필요가 없다.”
그 판단은 당시로서는 이해가 갔다. 인텔은 자신들의 강점, 그리고 눈에 보이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ARM은 인텔의 거절을 발판 삼아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을 장악했고, 애플과 퀄컴, 삼성과 손잡으며 모바일 생태계를 지배했다.
인텔은 독자적으로 모바일 CPU를 개발했지만, 이미 늦었다. 전력 효율과 생태계 지원에서 경쟁자를 따라잡지 못했고, 결국 모바일 사업은 철수 수순을 밟았다.
한때 최강이었던 기업조차, 눈앞의 안정만을 좇다 길을 놓칠 수 있다. 사람 일은 모른다. 기술과 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지금 옳다고 믿는 결정이 몇 년 후에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인텔의 거절과 ARM의 기회 포착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얼마나 작은 선택 하나가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빌드업 좀 그만…
내가 너무 바쁠 때 이 책을 읽어서 그런 걸까?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시간이 없어 챕터 앞부분의 사소한 문단 몇 개를 건너뛰었더니, 놀랍게도 그 내용이 결말에서 중요한 반전 요소로 돌아왔다. 아마 저자만의 글쓰기 패턴인 듯하다. 뒤로 돌아가 다시 읽으면서 혼자 “아, 빌드업 좀 그만…” 하고 여러 번 중얼거렸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분들은 여유를 가지고, 건너뛰지 말고 찬찬히 읽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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