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iens(Yuval N. Harari)

제1부. 인지혁명

1.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인류에는 호모 사피엔스 뿐 아니라 많은 다른 종이 있고 이들은 2백만 년 전부터 약 1만년 전까지 지구 상에 섞여서 존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은 호모 사피엔스, 한 종류만 남았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를 비롯한 인간 종에는 여러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뇌가 크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직립보행이다. 직립보행의 결과 여성의 산도가 좁아졌고 자연선택의 결과 이른 분만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더 연약한 아기를 낳게 되었다. 더 연약한 아기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생태계에서의 서열은 지극히 낮았다.

    그러나 인간은 빠른 시간 안에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그 요인 중 하나는 불의 사용이다. 늦어도 약 3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 종은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이들 종이 서로 교배를 하였다는 ‘교배이론’과 그렇지 않고 서로를 배척하고 학살하여 승자가 남았을 것이라는 ‘교체이론’이 있는데 교배이론에 대한 근거도 영 없지는 않으나, 교체이론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사피엔스가 유일한 인간 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언어’를 제시한다.

    2.지식의 나무

    사피엔스가 최초로 아프리카를 벗어나 중동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만났을 때는 사피엔스가 패했다. 그러나, 약 7만년 전 아프리카를 두 번째로 벗어난 사피엔스 무리는 중동 뿐이 아니라 전 지구 상에서 사피엔스를 제외한 다른 인간 종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는데, 연구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그 시기에 사피엔스 내에서 일어난 인지 혁명을 꼽는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사피엔스는 정교한 언어를 구사하고 많은 정보를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을 만큼의 언어를 발달시킬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허구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전설, 신화, 신,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인간이 만난 적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단합하여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할 수 있는 것은 국가, 종교와 같은 허구의 시스템을 믿고 그 이름 아래 단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60쪽)

    3.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7만 년 전의 인지혁명과 12,000여 년 전의 농업혁명 사이에 수렵채집인이었던 사피엔스들은 부족별로 생활 방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해서 통일하여 논의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먼저 수렵보다도 채집 위주의 생활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기술과 주의력이 필요했다. 돌칼 만드는 법, 사자를 만났을 때의 대처법, 미세한 소리를 알아차리는 법, 소리내지 않고 이동하는 법 등. 지금의 현대인보다도 주변 환경에 대해 더 넓고 싶은 지식과 신체 능력이 필요했다.

    수렵채집인들은 생각보다 안락한 일상을 보냈다. 주 평균 40시간을 일했는데 이는 현재 수준에 못 미친다. 정제된 식사를 하는 현대인에 비해 다양한 것을 채집해 먹으면서 지금보다 고른 영양소를 섭취하였다. 한 가지 식량에만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굶어 죽는 일도 없었고(식량이 떨어지면 이동했으므로.), 가축도 없었으므로 전염병도 없었다.

    4.대홍수

    45,000년 전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호주에 처음 상륙한지 몇 천 년 되지 않아 호주에 있던 대형동물들은 사실상 모두사라졌다. 호주 전체의 생태계 먹이 사실이 붕괴, 재조정되었다. 기후변화도 한 몫 했겠지만, 사피엔스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라는 데 세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 기후 변화는 눈에 띌 만큼 급격한 것이 아니었다. 둘째, 해양동물의 개체수는 줄어들지 않고 육상의 대형동물군만 줄어들었다. 육상의 대형동물은 사피엔스의 주적임을 상기하자. 셋째, 호주에서 일어난 것과 유사한 대량멸종이 그 이후 수천년 간 인류가 어딘가에 정착할 때마다 반복되어 일어났다.

    만약 정말로 사피엔스가 대형동물들을 몰아낸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 이유로 다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대형동물은 번식 속도가 느리다. 둘째, 사피엔스가 화전법, 즉 불을 질러 농경지를 만드는 법에 이미 익숙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자신들이 초래한 대홍수에서 살려둔 동물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가축들이다.

    제2부. 농업혁명

    5.역사상 최대의 사기

    약 1만년 전, 농업혁명이 일어났다. 자연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자연물을 채집하던 방식을 버리고 자연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우리의 주식인 밀, 쌀, 옥수수, 감자는 기원전 9500년에서 3500년 사이 작물화된 것이다.

    농업혁명은 수렵채집시대에 비하면 한 단계 발전된 것이라는 통념에 저자는 반대한다. 저자에 따르면, 수렵채집인들은 농업혁명 훨씬 전부터 자연에 해박했다. 그리고, 농부의 삶이 수렵채집인의 삶보다 더 힘들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인간이 밀을 재배한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렀다. 밀은 원래 잡초 중 일부로, 중동에만 서식하던 것이었으나 인류의 식량이 된 덕분에(?) 전 세계로 자신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인간은 하루 종일 밭을 고르고, 물과 영양분을 주었으며 잡초를 뽑고 해충을 죽이는 노동력을 들이부어야 했다. 이는 사피엔스의 신체에 디스크, 관절염과 같은 질병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면 어떻게 밀이 지금까지 인간의 주식이 될 수 있었는가? 밀은 농부 개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했지만,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크게 늘림으로써 인류 전체의 식량을 증가시키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저자의 표현이 조금 잔인한데 다음과 같다. 농업혁명은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열악하게 살아 있게 만들었다.

    밀을 작물화한 이유가 순수하게 식량 생산 증진만이 아닐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된 유적지는 기원전 9500년 경의 것으로, 스톤헨지보다 더 크고 건설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기념비들이다. 이는 강력한 종교나 이념이 있었을 것을 상징한다. 놀라운 것은, 이 근방이 작물화된 밀의 기원이 되는 발상지 중 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로부터, 밀 작물화는 어쩌면 사원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식량 공급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혁명은 곡식 재배로 끝나지 않았다. 인간은 양, 염소,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기원전 1만 년 전, 몇 백만 마리도 되지 않던 이들은 현재 10억 마리의 양, 10억 마리 이상의 소, 250억 마리 이상의 닭들로 불려져 있다. 그리고 이어서, 가축화된 동물들의 사육 과정을 설명하는데 잔인하고 슬퍼서 한동안 입맛을 잃고 많이 우울했다. 사피엔스는 참 나쁘다.

    6.피라미드 건설하기

    농부는 수렵채집인과 달리 떠돌아다니지 못하고 정착지에 살았다. 자연스럽게 집이라는 구조물이 생겨났다. 자신의 집에 애착을 갖고 자신과 이웃을 분리하게 되면서 인간은 이전보다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뭘 많이 가진 것은 아니다. 집도, 경작지도 매우 좁았으며 지구상의 전체 땅 면적에 비하면 인간이 정착한 땅의 면적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장되었다. 수렵채집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늘 오늘, 현재였다. 그들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경인들은 내일의 비, 한 달 후의 추위를 걱정했다. 가뭄, 홍수, 흉년에 취약했기에 늘 식량을 비축해야 하는 힘든 삶을 살았다.

    잉여식량은 소수의 지배자와 엘리트를 낳았다. 다수의 농부는 하루 종일 땀흘려 일하여 소수의 지배자를 받드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들의 노동력을 먹고 자란 지배자들은 마을을 도시로, 도시를 왕국으로 만들었다. 농업혁명 이후 왕국과 제국이 출현하는 데는 불과 몇천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전적으로 협력본능이 부족함에도 왕국 단위의 협력이 가능했던 것은 공통의 신화 덕분이었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위대한 신들, 조상, 주식회사 아래 인간은 커다랗게 협력하여 문명을 이루어냈다. 예컨대, 고대 수십만 명의 바빌로니아인들은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신화 아래 하나로 뭉쳤다. 함무라비 법전은 여자를 남자보다, 노예를 귀족보다 천하게 대하는 것을 합법화할 뿐 아니라, 범죄 시 범인에 대한 잔인한 형벌도 소개하고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어떻게 군말 없이 이에 동의하였을까? 함무라비 법전은 ‘신들이 읊어준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1776년 영국의 식민지 아래 있던 이들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발표했다. 대표들은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신이 영감을 내려 주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시민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시민을 평등하게 대하므로 옳고 함무라비 법전은 그렇지 않으므로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 또한 평등의 신화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 또한 신화이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과 같은 것은 사람들이 허구로 만들어낸 가치이지, 원래 생물학에 또는 자연에 있던 가치가 아니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다.

    7. 메모리 과부하

    인간이 만들어 낸 신화, 즉, 법, 관습, 절차, 예절은 DNA를 통해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국이 생산하는 정보량은 엄청나다. 인간은 이에 대해 무지하게 태어나서, 사는 동안 계속 배워 이를 뇌에 저장해야 한다. 불행히도 인간의 뇌는 제국 규모의 정보를 저장하기에는 아쉬운 바가 많다.

    기원전 3500~3000여 년 전, 수메르 사람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만들어 냈다. “쓰기”이다. 기원전 3500~3000여 년 경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보리자루 거래 내역이 적힌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쓰기” 역시 한계를 갖는다. 기록을 다 모아둔 방대한 곳에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기록을 찾아내는 것은 컴퓨터 검색이 일상화된 지금과는 달리 매우 힘든 일이다.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한 분야만 담당하는 관료제와 분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9세기 이전 어느 시점에, 10개의 숫자로 이루어진 수 시스템이 등장했다. 여기에 사칙연산을 비롯한 여러 기능이 추가된 수학은 사회적 언어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인간은 컴퓨터가 알아듣도록 숫자로 말해야 하고, 인공지능 분야는 이진부호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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