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균형(최승필)

서로 다른 다양한 입장과 이해 관계 속에서 법이 어떻게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지에 관해 설명하는 책이다. 각 챕터 별로 무엇과 무엇 사이의 균형인지를 잘 파악하고 읽으면 재미있다.

소비자 보호와 입증 책임

이 챕터는 기업 이익과 소비자 보호 간의 균형에 관한 이야기다. 기업 이익을 극대화하고 소비자 보호 규제를 완화하기만 한다면 아무도 해당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소비자 보호만을 중시한다면 아무도 상품을 생산,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의 하나로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징벌적 과징금, 징벌적 손해배상을 들고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계기로 개정된 <환경보호법>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규정하고 있는데 큰 틀에서 고의성 인식 정도, 피해 구제 노력 정도, 유해성을 고려하도록 되어 있다.

한편, 입증 책임은 늘 기업과 개인 소비자 간에 첨예한 주제다. 입증 책임은 개인 소비자에게는 엄청난 허들이다. 책에서는 암보험을 예로 든다. 보험사가 암에 대한 직접적 치료가 아니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소비자는 해당 치료와 암의 관련성을 입증해야만 한다. 저자는 그래서 약관에 입증 책임 내용이 미리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미리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개인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한편, 소비자 입증 책임 완화를 위한 예시로 2017년 제정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을 든다. 일반인이 어려운 화학 물질의 독성과 발병과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 법은 그 입증 부담을 완화해주는 것으로서, 소비자는 가습기 살균제 노출 여부, 관련 질병의 발병 여부만을 증명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기업이 책임지고 증명하여야 한다고 한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못하는 이유

저자는 우리 사회가 정의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원인으로 주관적 정의 관념과 프레임을 꼽는다. 그 중 프레임에 관한 설명이 인상 깊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이 정의로운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프레임을 씌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보수 지지자들에게는 보수가 하는 일은 모두 정의롭고 진보 지지자들에게는 진보가 하는 일은 모두 정의로워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보수도 틀릴 수 있고, 진보도 틀릴 수 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우리나라는 어떤 일을 바라볼 때 프레임을 걷어내고 바라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적 창의성의 필요성

법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크게 입법, 행정 그리고 사법으로 나뉘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 중에서 입법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입법이 단순히 정치의 영역이며 입법의 배경, 이해관계 조절, 쟁점에 대한 사전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법적 창의성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법적 창의성이란, 현재 이미 존재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적 대표적인 쟁점들에 대한 법의 역할을 논하는 담론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법을 배우고 적용하기에 바빴기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우리 사회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합의를 거쳐 규범화하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축적의 시간

인류의 기술 발전은 대개 ‘축적의 시간’이며 저자에 따르면 법의 시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법은 절대자가 내려주는 기준이 아닌 우리 삶 속에서 필요에 의해 형성되고 합의에 의해 준수되는 규범이다. 책에서는 그 예로 독일 법에서 점유 제도가 특히 발달한 이유, 미국에서 개인 소유권을 배타적일 정도로 보호하는 이유를 든다.

오늘날의 예시로서 공유 경제를 든다. 공유 플랫폼에 대한 요즘의 입법은 기존 이익과의 조화를 꾀한 중간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택시와 경쟁하지 않는 시장에서 우버 영업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에어비앤비 대상을 외국인이나 특정 지역으로 제한하는 것이 여기 해당한다고 한다.

판례는 전형적으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 형성된 판례는 좀처럼 후진하지 않는 ‘톱니바퀴 효과’를 갖는다. 그러한 판례 역시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하여 변경될 수 있는데, 책에서는 전원합의체에 의한 판례 변경 절차와 그 예시를 소개한다. 또한 법률가가 판례를 그 시대상에 맞게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법률가가 늘 사회 변화에 귀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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